* 20여 채 고가를 만날 수 있는 마을, 오천유적지 *
안동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약 20km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오천 유적지’라는 안내판과 자연석에 ‘군자리’라고 새긴 표석이 연이어 서 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300m 정도 들어가면 20여 채의 고가들이 들어앉은 안배된 유적지에 다다른다. 자동차로는 안동시청에서 출발한다면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이곳이 조선조 초기부터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세거해 온 외내에 있었던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들을 1974년 안동댐 조성에 따른 수몰을 피해 새로 옮겨 놓은 오천유적지이다.
‘군자리’라고도 불리는 이 유적지는 산 중턱에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으며, 앞 골짜기가 호수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유적지는 터를 2단으로 구분하여 아래쪽에 주차장을 만들었고, 위쪽에는 산기슭의 경사면을 따라 광산김씨 예안파의 중요 건물들을 잘 배치하여 놓았다. 이제는 주위의 국학진흥원, 도산서원 등과 더불어 ‘안동의 주요 관광코스의 하나가 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천근 교수는 안동의 종가에서 이 문화재단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화가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적절하게 묘사했다.
* 오천유적지의 다양한 문화재 *
오천유적지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탁청정을 들 수 있다. 탁청정은 1541년(중종 36) 김수(金綬)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서 개인 정자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와 함께 탁청정 종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고문서(보물 제1018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전적(보물 제1019호), 후조당 유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선대 유물, 고문서, 서적 수백 점이 전시되어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동문동 소재, 생활문화, 숙박 체험.
성균원생 김효로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뒤 그 후손들이 500년 가까이 살았다. 원래 장소는 낙동강가에 접한 곳이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이들 소유의 문화재를 산중턱인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유적지의 대표적인 문화재 탁청정은 1541년(중종 36) 김수(金綬)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서 개인 정자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의 현판이 걸려 있다. 후조당은 예안파 종택(宗宅)에 딸린 별청 건물로 조선 선조 때 김부필(金富弼)이 창건한 정면 4칸, 측면 4칸 ㄱ자집이다. 이와 함께 탁청정 종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고문서(보물 제1018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전적(보물 제1019호), 후조당 유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선대 유물, 고문서, 서적 수백 점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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