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 부농의 가옥 형태를 보여주는, 영암 최성호가옥 *
조선 후기 전형적인 남도 부농의 집으로 19세기 말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20세기 중반에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문간채의 상량문에 ‘숭정기원사회갑이십팔년무신구월초칠일청축 상량’이라 기록되어 있어 1848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안채와 사랑채는 문간채보다 이전에 건축된 듯하다.
* 최성호 가옥의 구조 및 배치 *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그리고 헛간채가 사방에 배치되어 작은 규모이지만 짜임새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안동의 ㅁ자 형식과는 다른 각각의 독립된 집 네 채가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문간채 서쪽 끝에 대문이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사랑채가 보이고 우측으로 헛간채가 이어지며, 마당을 지나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아담한 규모의 一자형 집으로 서쪽부터 부엌·큰방·대청·작은방이 있으며, 부엌을 제외하고 앞쪽에 툇마루가 있다. 작은방 뒷쪽에는 아궁이가 있으며, 안방과 부엌 전면에 각각 계단을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남도식으로 서쪽부터 아랫방과 옆으로 앞은 부엌방, 뒤는 사랑부엌이 있으며, 사랑아랫방·사랑윗방·대청 순서로 배치하였다. 여기서는 대청을 광으로 이용한다. 대문채는 왼쪽부터 대문간·문간방·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간채에 대청공간을 둔 것이 민가형식에서는 특이한 것이다. 헛간채는 한쪽에 광이 있고 다른 한쪽에 화장실이 있으며 중심부에 헛간채가 있다. 후원과 주변에 자란 나무들이 시원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부엌 뒤의 장독대가 대나무 숲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아 청결한 감을 주고 있다.
[문화재 정보]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164호
지정연도 : 1984년 1월 10일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가옥
소유 : 최성호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다.
국가유공자 및 참전용사 묘지, 묘역현황, 관계법령, 사이버참배 제공.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모시는 국립묘지이다. 1997년 4월 14일 착공하여 4년여에 걸쳐 조성하고, 2001년 1월 1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영천호국원으로 개원하였다. 2006년 1월 30일 국립영천호국원으로 승격하였고, 2007년 1월 1일 국가보훈처 소속 국립묘지로 편제되었다. 부지면적은 약 36만 9,000㎡로, 2만 2,000여 기를 안장할 수 있는 묘역(국가유공자·한국전쟁참전군인·한국전쟁참전경찰·월남참전군인묘역)과 1만 2,000여 기를 안치할 수 있는 납골당 시설인 충령당(봉안실 16실·영상제례실 2실)이 있다. 그밖에 추도식과 안장식을 거행하는 현충관과 현충관 내부의 호국안보전시관(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해외파병실·유품전시실)을 비롯하여 현충탑, 현충문, 홍살문, 영천대첩비, 전투장비전시관, 호국지(護國池), 식당 및 매점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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