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는 사찰, 법화암 *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창건 당시 영취산에 있던 보림사(寶林寺)의 부속 암자였으며, 1850년(조선 철종 1) 국의(國儀)가 중창하고 1857년(철종 8) 다시 국의가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법당이 남아 있고, 법당 안에는 법흥왕 때(재위:514∼540) 만들어졌다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영산 법화암다층석탑이 전한다. 흔히 청석탑 또는 와탑이라고 부르는 이 탑은 본래 보림사에 있던 탑인데, 임진왜란 때 보림사가 불에 타자 법화암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원당의 다층석탑과 형태가 비슷하다.
또한 암자 뒤편의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내는 바위병풍은 길손들에게 또 다른 비경을 선물한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풍경소리가 더 청정하게 느껴지는 법화암은 삶에 지친 중생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준다. 법화암은 지나가는 길손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부처님과 인연한 이들에게는 법당의 문을 여 밀고 들어가 두 손 모아 삼배의 예를 올리면 잠시나마 마음의 때를 씻는 안식처와도 같은 곳이 되어 준다.
* 법화암에 대한 얽힌 전설 *
법화암에는 쌀바위와 빈대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어느 해에 흉년이 들어 한 승려가 굶어죽겠다고 하자 주지가 ‘쌀 담을 그릇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승려가 그릇을 가져오자, 주지는 암자 뒤에 있는 큰 바위로 가더니 합장하고 염불을 외웠다. 그리고 석장으로 바위를 찔러 구멍을 내자 쌀이 나왔다. 쌀은 매일 먹을 만큼만 나왔다. 주지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새 주지가 부임해 왔다. 그는 쌀이 나오는 바위를 보자 욕심이 났다. 바위를 부수면 천 석, 만 석의 쌀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석공을 시켜 구멍을 크게 뚫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쌀 대신 빈대가 쏟아져 나왔고 빈대가 온 절에 퍼져 절이 황폐해지고 말았다. 지금도 법화암 옛터 돌틈에는 빈대가 많이 기어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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