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성황후의 출생 전설과 관련된 사찰, 대법사 *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된 신생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 높이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하여 ‘미륵당’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1971년부터 대웅전과 요사채, 1988년에 지장전과 종각을 세웠으며 1989년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경내에 구조물로는 일주문, 국사당, 범종각,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이며 지장보살, 지장탱화, 칠성탱화, 시왕도, 범종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에 콘크리트 건물로 독성상, 산신상을 봉안하고 있다.
* 대법사와 명성황후의 이야기 *
대법사가 유명한 이유는 민비, 즉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인 민치록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대법사가 여흥민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조선 숙종 때의 일로 사찰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閔鎭厚)의 묘를 쓰면서 부터이다. 이후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閔致祿)이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는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하였다. 이 후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했는데 부인 한산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라고 한다. 그 후 명성황후가 후일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절을 원당사(願堂寺)로 개칭하였으며,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절은 더욱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원당사는 사라지고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大元)스님 또한 어느 날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 원당사의 발자취는 대웅전에 모셔진 미륵불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이 석불은 한때 사찰에서 석고를 발라 좌불을 만들고 금칠을 해 모시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석고는 떨어져나가고 원래의 모습인 지금의 돌부처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위치, 사찰소개, 기도 및 법회, 사진, 동영상 등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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